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건축 (문단 편집) ==== 장식화 경향 ==== 조선 후기에 들어서 건축의 '''장식화 경향'''이 심해진다. 유교로 인해 강력했던 신분은 급속히 느슨해져 건축 부분에서 그 제한이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신분마다 건축을 차별한 통일신라 때와 마찬가지로 가사제한령 등의 법을 통해 지배층인 양반의 가옥에조차 그 장식이나 재료를 엄격하게 제한했는데, 건축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서 금과 은, 옻칠 등 사치스러운 물품을 민간에서 쓰지 못하도록 제약을 두었다. 그래서 옻칠장식이나[* 건물에 붉거나 검은 옻칠을 하는 옻 단청이 조선 시대에는 잘 쓰이지 않았다. 고대 사회에서는 단청보다 옻칠을 더 격이 높다 여겼다. 이에 대해서는 [[무령왕릉]] 항목 참조. 조선 말기까지 옻칠 단청은 실낱같이 명맥을 이었지만, 한국 전쟁으로 마지막 옻칠 건축이 불타며 현존하는 전통 건축에서 옻칠 단청이 쓰인 건물은 사라지고 만다. 옻칠 단청은 현대에 만든 한옥에서 볼 수 있다.] 금속 장식을 쓰지 않은 것 등으로 조선의 건축이 수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금속 장식만 쓰지 않았을 뿐 다른 부분의 장식은 발달한다.[* 고대의 경우 장식물도 원래는 금, 동화(구리꽃), 치미, 비단, 각종 기와 장식 등 금속 장식이 많았는데,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금속 장식은 근대까지 쓰긴 했지만 고대만큼 건물 공포에까지 폭넓게 애용하진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건축이 수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수백년간 장식에 대한 기술이 수요를 잃어버려 맥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불교 건축, 공공 건축, 왕실 건축에서 지속적으로 그 명맥을 이어나갔다. 기록 상에서는 조선시대 내내 일부 기술은 끊기고 새로운 기술은 생겨나고가 확인되기는 하나 대규모로 기술이 단절되는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장식 기술이 단절된 것은 6.25 전쟁을 거치고 현대에 와서 진행되었으며,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 [[파일:숭례문 공포2.png|width=400px]] || [[파일:사정전 공포.png|width=400px]] || || 조선 전기 건축인 숭례문의 공포부 || 조선 말기 건축인 사정전의 공포부 || 조선의 장식화 경향은 건물 구조 자체를 화려하게 꾸미는 식으로 나타난다. 사치에 민감하여 비싼 재료로 건물을 장식하는 방식은 지양했다. 조선의 장식화 경향은 조각을 세밀하고 화려하게 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단청]]이나 부재를 화려하게 조각하는 방식으로 그 양상이 변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다포양식이다. 창살이나 기단부를 세밀하게 조각해 장식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내부 장식의 경우 창살을 세밀하게 공예하거나 비단, 병풍, 벽화, 목각으로 장식했다. [[파일:external/mahan.wonkwang.ac.kr/b03.jpg|width=500px]] [[파일:external/mahan.wonkwang.ac.kr/b03.jpg|width=500px]] 조선 전기 경복궁은 궁궐내 건축물들에 대하여 청자로 만든 기와와 용무늬가 새겨진 석조 기둥들을 자주 사용했으며 조선 후기에도 강화행궁과 [[외규장각]] 전도에 묘사된 용미는 심지어 금칠까지 되어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함과 사치스러운 장식들을 무조건 배격하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현판이나 방문(榜文)의 형태로 곳곳에 예절이나 마음 수양과 관련된 글귀를 써붙인 것도 특징이다. [[서원]]의 경우에는 아예 공간구조에까지 성리학적 세계관과 마음의 구조 등을 반영해서 지었다. 단청의 경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민간 건축에서 단청을 허용하지 않았다. 단청은 종교나 공공 건축에 허용됐다. 조선시대에 단청은 더 복잡한 방향으로 발달해 갖은금단청 등의 양식이 등장했다. 특징은 궁궐이나 종묘 같은 국가의 핵심 건축물보다도 전국 각 지방의 유명 사찰들이 더 화려하고 정교한 금단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비록 교세가 줄어 건축의 규모는 조선 이전에 비해 줄었지만 유교적 기조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는 종교 건축물이란 특성 덕에 오히려 왕실건축보다 더 화려한 것이 허용된 세계적으로 특이한 사례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